[전염병 가축 매몰지 부족해지자… 지자체에 '퇴비로 활용' 지침]



농림부 '열처리하면 병원균 사멸… 농가에 무상으로 유통·공급'



병원균 잠복 가능성 높고 부패때 생긴 세균 고열서 안죽어

비료관리법 등 위반 지적도



지난 17일 오후 지방의 한 농가 앞. 포클레인이 땅에 묻혀 있던 플라스틱 통에서 닭 사체를 퍼내 컨테이너 박스처럼 생긴 열처리 장비에 넣고 있었다. 지난 1월 이 지역 농가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된 닭들이다. 닭의 사체는 180도 고열로 가열된 후 분쇄돼 가루로 나왔다. 이 지방자치단체는 이 가루를 주변 농가에 퇴비로 무상 제공한다. 현장에 있던 지자체 관계자는 '매년 AI가 발생해 더 이상 닭·오리를 묻을 곳이 없어 매몰지에서 사체를 파내 달라는 주민 요청이 많다'며 '전염병으로 죽어 땅에 묻은 동물 사체는 3년간 발굴할 수 없지만, 매몰지가 부족해 민원이 들어오면 바로 파낸다'고 했다.

 

정부는 2015년 9월 AI와 구제역으로 파묻은 가축 사체를 발굴해 퇴비로 사용하라는 지침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일부 지자체가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체에 병원균이 잠복해 있을 가능성이 커 안전성 문제가 제기된다. 이날 동물 사체 발굴 작업장에서 10m쯤 떨어진 곳에도 닭·오리를 키우는 축사가 있었다.

 

◇AI·구제역 감염 사체 발굴 안전성 논란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적으로 AI와 구제역 매몰지는 약 1100곳이다. 대부분 농가 인근 논이나 밭이다. AI와 구제역이 반복되면서 동물 사체를 묻을 곳이 부족하다. 땅에 있던 사체를 파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농림부는 이 사체를 열처리 후 퇴비로 만드는 고시(告示)를 만들었다. 자유한국당 권석창 의원실이 입수한 농림부의 '가축 매몰지 사후 관리 지침' 고시에는 '사체를 열처리해 퇴비로 만들어 농가에 무상으로 유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지자체들이 지금까지 발굴해 'AI·구제역 사체 퇴비'를 만든 매몰지가 약 60곳에 이른다. 농림부 관계자는 '동물 사체를 완전히 태워 없앨 수 있는 소각 시설을 만들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며 '가루 형태로 만드는 소각 장비는 값이 비교적 싸고, 이를 비료로 활용할 수도 있어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농림부는 발굴 전 병원균 유무를 검사하고 매몰지 주변 소독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염병에 걸려 땅에 묻은 동물 사체를 열처리해 퇴비를 만드는 방식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외국에 이런 사례가 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매몰지에서 병원균이 검출되지 않아도 사체의 장내에 있는 보툴리눔 등 높은 온도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세균이나 독소가 있다. 이런 사체를 퇴비로 사용하면 오히려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말했다.



최근엔 사체를 그대로 땅에 묻지 않고 통 안에 밀폐해 묻는다. 사체가 잘 썩지 않는다. 조호성 전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통 안에 넣고 묻었을 때에 동물 사체 내 병원균이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한 연구는 없어, 안전성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체를 고온 살균하는 열처리 장치는 트럭에 싣고 다닌다. 만약 이 장치에 병원균이 묻어 있다면 다른 곳으로 전염병이 퍼질 가능성도 있다.

 

◇법 규정과 안 맞는 정부 정책



농림부의 고시가 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있다.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르면, 구제역·AI 등 가축 전염병에 감염됐거나 이를 예방할 목적으로 살처분해 땅에 묻은 가축의 사체는 3년간 발굴해서는 안 된다. 또 비료관리법은 전염병으로 죽은 동물 사체를 퇴비 원료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농림부 지침은 '발굴 금지 기간 중이라도 병원체(AI·구제역) 검사 결과 음성인 매몰지에 한해 농림부·환경부 장관의 허가를 받으면 퇴비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농림부는 '법률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 비료관리법 등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농림부는 일반적으로  볏짚이나 병에 안 걸린 동물 사체 등으로 농장에서 생산한 일반 퇴비는 일정 한도 내에서 유통시킬 수 있다. 하지만 전염병으로 죽은 사체로 만든 퇴비는 유통이 제한된다.



농림부 관계자는 '이런 퇴비는 매몰지 주변 지역을 벗어나 외부로 유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농림부도 이렇게 만든 퇴비의 안전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권선미 기자

 

<2017년 10월 19일자 조선일보 기사내용 인용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