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남 (제주대 생명자원과학대학 교수)

 

 

과채류·엽채류·과수에 초점 맞춰 혼합 가능한 농약부터 제시해야

 



비료와 농약을 혼합 살포해보지 않은 농민은 없을 것이다. 농민들은 혼합 살포하면서 늘 효과와 피해를 걱정한다. 약해를 입었던 이들도 많을 것이다. 정부는 어떤 일보다 이 어려움을 먼저 해결해줘야 한다.



비료·농약 혼합에 대한 논의는 몇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몇몇 연구자들이 필요성을 강조했고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는 비료·농약 혼합제품 상용화를 발표했다. 비료·농약 업계와 농민들은 환영했다.



그러나 이를 벼농사에만 한정하고 점차 기준과 비료·농약 규정을 마련한다는 얘기를 듣고 농민들은 실망했다. 비료·농약 혼합제품이 개발됐다는 얘기도, 사용해본 사람도 없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방안이 되고 만 것이다.



비료·농약 혼합기술은 벼농사가 아니라 과채류와 엽채류·과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보다는 농민들이 자주 사용해온 엽면시비용 비료에 혼합할 수 있는 농약과 할 수 없는 농약을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것이 요소 엽면시비다. 요소 엽면시비는 작물을 잘 자라게 하지만 병해충에 약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농민들은 요소에 농약을 혼합해 사용하고 싶어한다. 약해를 무릅쓰고 혼합해서 사용하는 농민도 많다.



칼슘 엽면시비는 과수와 과채류·엽채류 등 여러 작물에 사용한다. 세포 사이를 단단하게 하는 기능 때문에 사과 고두병, 고추 탄저병, 토마토 배꼽썩음병 예방 용도로 사용된다. 배춧잎 가장자리가 타거나 딸기잎 끝이 타는 팁번현상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작물의 저장성도 향상시킨다.



따라서 엽면시비용 칼슘제에 혼합이 가능한 농약만 알려줘도 일손을 훨씬 줄일 수 있다. 농약 사용량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일손이 부족한 농민들에게 이보다 고마운 선물이 또 있을까.



엽면시비용으로 사용하는 요소·칼슘제·붕소제·영양제·4종복합비료는 모두 물에 녹아서 양이온과 음이온 형태로 존재한다. 농약에는 극성 또는 비극성을 띈 것이 있다. 비료와 반응하는 농약과 반응하지 않는 농약을 구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는 이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일반 농민은 알 방법이 없다.



비료·농약 혼합제품 개발을 제조회사에만 맡겨서는 안된다. 제조회사는 손익을 따져야 하는 만큼 잘 팔릴지도 모르는 제품개발에 돈을 투자할 리 없기 때문이다. 농약은 병으로 팔고, 비료는 포대로 판매하는 탓에 혼합제품을 쉽게 개발할 수도 없다.



농민들이 실제로 바라는 것은 비료와 농약이 혼합된 제품이 아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엽면시비용 비료에 혼합할 수 있는 농약과 절대 혼합해선 안되는 농약을 알려주기를 바란다. 혼합했을 때 약효가 얼마나 낮아지고 어떤 약해가 나타나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목마른 사람에게 가장 급한 일은 눈앞에 있는 물이 마실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갈증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먹는 샘물공장을 지어주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다.



농민들은 엽면시비에 요소·칼슘제·붕소제·영양제·4종복합비료를 많이 사용한다. 이 엽면시비용 비료와 혼합할 수 있는 농약에 어떤 것이 있고 혼합하면 어떤 약해와 문제점이 나타나는지만 구별해줘도 농민들의 타는 목마름은 해소될 것이다. 농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이 만사를 제쳐두고 이 문제부터 해결해준다면 농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것이다.

 

 

<2019년11월25일 농민신문 기사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