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문제, 식량 문제를 단순히 경제논리로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주기적으로 에너지 장기 수급계획을 수립하는 것처럼 적정 쌀 생산량, 그리고 이에 필요한 논 면적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를 담은 장기 식량 수급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는 1일 <농민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지금의 쌀값 대란이 정부의 임기응변식 대처에서 비롯된 예견된 사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국이 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우리 곡물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라며 “식량 수급에 대한 정부의 큰 그림이 없다 보니 지금과 같은 사태가 계속해서 빚어지지 않냐”고 했다.
안 전 대표는 “우리 것보다 수입 농산물이 싸다는 경제논리로 식량 문제를 접근하면 위험하다”며 “보다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농업과 식품산업에 정보기술(IT)·생명공학을 접목한다면 농산물 수급안정은 물론 농업·농촌의 발전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국민의당이 최근 열린 의원총회에서 ‘쌀값 정상화’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햅쌀 80㎏ 1가마 가격이 13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21년 전인 1995년 이후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절대농지(농업진흥지역) 해제’ 같은 부동산대책만 늘어놓을 뿐 정작 쌀농가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쌀은 주식이자 농정의 근간이다. 1970~1980년대 저곡가정책을 강요당한 농민의 희생을 잊어선 안 된다. 지금은 ‘쌀값 정상화’가 농정의 최우선 과제다.
- 쌀값 하락이 정부의 실정(失政)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가 쌀 수급·가격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5년 전 자동 시장격리제, 쌀자조금, 가공쌀 전용 재배단지 조성 같은 대책을 마련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게다가 정부는 ‘식생활 변화로 쌀 소비가 감소하지만, 생산량은 오히려 늘었다’며 쌀값 하락을 농민 탓으로 돌렸다. 쌀 소비는 연간 8만~9만t씩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예측 가능한 수준이다. 결국 지금의 사태는 정부가 수급 대책을 실효성 있게 추진하지 못한 결과다.
- 국민의당이 정부에 요구하는 대책은 무엇인가.
▶국민의당이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한 선제적인 대책을 요구한 게 9월19일이고, 4일 뒤에는 격리 같은 구체적인 안정화 정책도 내놨다. 여야 3당 중 국민의당이 가장 먼저 쌀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고 대책까지 내놓은 셈이다. 정부 수매·격리 물량을 100만t 이상으로 확대하고, 우선지급금을 인상하라고 요구했다. 밥쌀용 쌀 수입 중단과 생산조정제 도입도 촉구했다.
이런 조치가 서둘러 정책으로 이어졌다면 쌀값이 지금처럼 폭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 생산조정제를 비롯해 모두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사업이다. 예산당국 설득이 만만치 않을 텐데.
▶생산조정제 효과는 이미 나와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이 제도가 ‘쌀값 정상화’에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생산조정제를 2017년 3만㏊, 2018~2019년 각각 6만㏊ 도입하는 데 소요되는 예산은 2700억원이지만, 쌀값이 안정되면서 변동직불금 예산을 5719억원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물론 특정 품목으로 생산이 집중되지 않도록 대상 품목을 다양화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추가격리에 따른 정부재고 증가는 저소득층에 대한 쌀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풀어가면 된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에 적용되는 정부양곡 할인율을 50%에서 70%로 높인다면 정부양곡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 농업진흥지역 해제는 왜 반대하나.
▶농업진흥지역은 농업과 관련되지 않은 일은 할 수 없도록 용도를 제한한 곳으로, 그만큼 식량안보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절대농지’라고 부른다. 이미 정부는 올해 8만5000㏊를 해제했고, 추가 해제를 준비하고 있다. 식량안보를 고려하지 않은 접근이다. 우리 곡물자급률이 20%대다. 쌀이 필요량보다 많이 생산된다면, 쌀을 재배하던 농지에 다른 식량작물이 재배되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 쌀 문제 때문에 식량안보의 우선순위가 밀려서는 안 된다.
- 쌀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농업이 어렵다. 농정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농민들을 만나 어려움을 들어봤다. 감귤 역시 쌀처럼 가격이 좋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단기적으로는 가격이 중요하겠지만, 감귤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감귤을 가지고 부가가치를 높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IT·생명공학을 접목하는 4차 혁명을 통해 안정적인 감귤 수요처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일들은 우선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우리 선조들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며 농업을 세상의 근본이라고 했다. 식상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그 의미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상기후가 일상화됐고, 지구 인구도 70억명을 넘어 곧 90억명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식량부족은 예측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소중한 농업이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저 역시 농민과 함께하겠다.
김상영 기자, 사진=이희철 기자
※ 2016년 11월 4일자 농민신문 기사내용 인용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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