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올해 쌀 공급 과잉으로 인한 가격 하락 문제가 자못 심각해지고 있다. 수요는 390만t 정도인데 420만t이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잉생산이 계속되자 2013년 80㎏ 한 가마당 17만5000원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 하락하던 쌀값이 드디어 13만 원 선으로 떨어지고 있다. 쌀값이 목표가격인 18만8000원 이하로 떨어지면 차액의 85%를 보전해 주기로 한 변동직불금이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정한 한도인 1조4900억 원을 초과하는 사태까지 예상된다.



이미 9월 말 기준으로 171만t 쌀 재고를 안고 고민하고 있는 정부지만, 쌀값이 13만411원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30만t 안팎의 쌀을 사들여 시장으로부터 격리시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국민이 안 사 먹는 쌀을 사 재어 놓고 있으면 정부라고 무슨 대책이 있는 게 아니다. 쌀은 대충 3∼4년이 지나면 아무리 값을 싸게 해 줘도 밥쌀용으로는 팔 수 없게 된다. 마침내 일본처럼 헐값에 사료용으로 팔아치울 수밖에 없는 쌀이 생기게 된다. 비싼 값에 사서 막대한 보관비용까지 써 가면서 3∼4년 쌓아 두었다가 헐값에 파는 것이다. 농민(農民)·농촌을 위해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소중한 돈을 허비(虛費)하는 것이므로 이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인 만큼 정부 당국도 백방으로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들이 있다.



먼저, 식량 안보라는 미신부터 타파해야 한다. 농민 스스로 우리가 국민의 식량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농업 대국들이 다른 나라의 시장을 개방해서 한 톨이라도 더 팔려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엄청나게 많은 곡물이 사료용으로 투입되고 있다. 식량 안보를 위해서는 식량을 사 먹을 수 있는 달러를 확보하면 되는 것이지, 우리가 직접 생산해야만 하는 게 아니다. 국민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나라는 돈이 없거나 그 돈을 북한처럼 엉뚱한 데 써 버리기 때문이다. 굶는 나라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식량이 부족하다는 증거는 아니다. 



다음으로, 농산물도 총체적으로 공급 과잉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막대한 양의 농산물을 수입한다는 점에서는 공급이 부족한 나라지만, 어차피 먹거리를 수입하는 한 국내산으로 충족할 수 없는 만큼만 수입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공급 과잉을 피할 수 없다. 국민에게 우리가 생산하는 만큼은 우선 우리 쌀을 먹고 부족한 만큼만 다른 것을 먹으라고 할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거꾸로 국민 1인당 쌀소비량이 1970년 136.4㎏에서 지난해에 62.9㎏으로 줄어들었다. 우리는 쌀 시장, 쌀 산업만큼은 보호하려고 애써 왔지만, 쌀은 다른 먹거리에 시장을 끝없이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먼저, 밀·옥수수로 만든 먹거리에 시장을 빼앗기다가, 그 후에는 수입 곡물로 만든 사료로 키워 국제경쟁력이 있는 값에 공급될 수 있는 돼지고기·닭고기에, 나아가서는 과일·채소에 시장을 빼앗겨 온 것이다.



쌀 생산을 다른 작물로 전환시키겠다고 보조금을 주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과거 쌀 대신 콩을 심게 해서 수입 콩을 대체해 보자고 하다가 국산 콩의 가격 폭락만 초래한 쓴 경험이 있다. 비싼 국산 콩의 수요는 한정돼 있었던 것이다. 품질과 가격 면에서 수입 농산물과 경쟁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수요를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경쟁력 있는 것만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기준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식량 농업은 다 어렵다고 봐야 한다. 먼저, 쌀은 아열대 작물이어서 우리나라에서는 모내기라는 엄청난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 제대로 자랄 수 없는 작물이다. 밀과 보리는 냉대작물이어서 우리나라에서 잘 키우기가 어렵다. 감자도 냉대작물이어서 우리나라에서 여름을 나기가 어려워 크게 키우기가 쉽지 않고, 고구마는 아열대 작물이라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잘 자라기가 어렵다. 



게다가 식량 작물들은(콩·옥수수까지 포함해) 대규모 농지에서 대량생산을 하기 때문에 땅값이 비싼 우리나라에서는 토지 비용 때문에라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굳이 우리 손으로 우리가 먹을 쌀을 확보하고 싶으면 아열대 지방에 가서 싼 땅을 빌려서 생산할 일이다.



농업을 포기하자는 말은 아니다. 경쟁에 노출돼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경쟁력 있는 농업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 2016년 11월 1일자 문화일보 기사내용 인용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