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 기대 또 외면…들녘 한숨소리 안 들리나” 

선물가액 상향조차 거부한 건 현실 외면한 탁상행정의 전형 

추석 대목 내수 살리려면 지금이라도 법 손질이 최선 

“농가피해 막을 특단 대책을”

 

올 추석 전 ‘청탁금지법(김영란법)’ 개정은 물론 가액 조정까지 사실상 물 건너가면서 농업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박경호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은 8월28일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일부 업종의 매출이 실제로 얼마나 감소했는지를 파악해 11월이나 12월에 국민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농업계가 요구한 농축산물의 김영란법 적용 대상 제외는 물론 선물가액을 기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올 추석 전에는 힘들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농업계는 거세게 반발하며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 추석 전 김영란법 가액 조정 불발…농업계 격앙=추석 전에 선물가액이 조정될 것으로 기대했던 충북지역 과수농가들은 큰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보은에서 2만3100㎡(약 7000평) 규모로 사과농사를 짓는 송진원씨(59·삼승면)는 “농민들의 사정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며 “올 설에 선물용 사과거래가 뚝 끊겨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또다시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가액 조정을 미루는 것은 농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우농가들도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충남 홍성의 한우농가 박모씨(55)는 “김영란법은 한우농가와 한우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결과를 가져온 ‘악법 중의 악법’”이라면서 “이 때문에 농가들은 한우를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백번 양보해 선물 허용가액 한도라도 높여줄 것을 요구했는데, 정부가 이마저 거부한 것은 한우산업을 사지로 몰아넣겠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성토했다.



인삼농가들은 김영란법 때문에 인삼종주국의 위상이 붕괴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전북 김제에서 15년째 인삼농사를 짓는 안강용씨(52·백산면)는 “현 정부는 농민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적기에 문제점을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마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그는 “인삼종주국의 전통을 잇기 위해서라도 김영란법에서 인삼을 아예 빼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런 결정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고 허탈해했다.



한민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을 거치면서 농축산업에 김영란법이 어느 정도 큰 피해를 주는지 객관적으로 제시된 바도 있다”면서 “올가을 국정감사 때 이 문제를 집중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 농축산물 소비부진 대책 마련해야=소비위축에 대한 적기 대책마련도 절실한 상황이다.



이상복 충북원예농협 충주거점산지유통센터(APC) 소장은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올 설에 선물용 대과 수요가 눈에 띄게 감소했고, 이후 재고과잉으로 판매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며 “선물가액 조정조차 할 수 없다면 올 추석과 추석 이후 과수농가의 피해를 막을 특단의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동안 명절에 대부분 소진돼왔던 배의 소비촉진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반응이다. 김광출 경북 상주 외서농협 전무는 “배는 선물용 외에는 소비가 미미해 추석 명절에 최대한 많은 물량을 소화시켜야 하는데, 김영란법이 걸림돌”이라면서 “추석을 전후해 배 소비촉진을 위한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울산 울주에서 배농사를 짓는 강말옥씨(63·서생면)도 “친환경고품질 배 생산에 땀을 흘리고 있다”며 “김영란법으로 인해 농민들이 애써 재배한 농산물을 제값받고 파는 기회가 차단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강경일 전남 정남진장흥농협 조합장은 “표고 판로 확대를 위해 3만9900원짜리 선물세트를 만들어 홈쇼핑에서 방송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할 계획이지만 이런 노력만으로는 많은 물량을 소진하기에 역부족”이라며 “정부가 내수시장을 살릴 절호의 기회인 추석 대목을 활용하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김영란법을 손질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정선태 제주도농업인단체협의회장은 “김영란법이 농축산물을 예외로 하지 않는다면 명절 선물용 농축산물의 판매위축은 제주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이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는 불 보듯 뻔하다”며 “농업계 전체가 다시 한번 힘을 모아 김영란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류호천 김광동, 김윤석,오영채, 남우균, 노현숙, 김소영 기자

 

<2017년 9월 4일자 농민신문 기사내용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