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로 어려워진 농업, 공익적 가치 헌법 반영으로 희망의 씨앗 심어야

 

1997년 11월 대한민국은 초유의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고, 그해 12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구제금융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IMF 외환위기 여파는 농업도 예외가 아니어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국내 종자기업들이 차례로 외국 기업에 팔렸다. 1997년 말 업계 2위이던 서울종묘가 스위스계 노바티스(현 신젠타)에 넘어갔고, 1998년엔 업계 1·3위이던 흥농·중앙종묘가 세미니스(현 몬산토)에 팔렸다.



외국 기업의 국내 종자업체 인수에 대한 논란도 컸다. 찬성 측은 선진 경영기법과 첨단기술을 도입할 수 있고, 전반적인 종자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반대 측에선 유전자원과 육종인력 및 기술 유출, 농가부담 증가 등을 우려했다.



결과는 상당 부분 우려가 현실화됐다. 국내 종자산업 발전에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던 인수 당시 약속과 달리 다국적기업들의 신기술 이전은 지지부진했다. 오히려 인수합병 과정에서 육종인력이 대규모 구조조정됐고, 인수 후에도 경쟁력 없는 품목은 과감히 포기함으로써 구조조정이 계속됐다. 인수한 기업의 서울 본사와 지점 건물, 시험장 토지 등 수백억원대의 건물과 토지를 매각해 자금난을 겪던 본사로 송금하기도 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를 떠난 인력들이 우후죽순 새 회사를 차리면서 업체간 유사품종·덤핑거래 등 유통질서는 더욱 문란해졌다. 종자원에 등록된 종묘업체수는 2000년 415곳에서 2015년 1699곳으로 늘었다. 유전자원 유출을 막을 방법도 없었다. 2005년 세미니스를 인수한 몬산토는 7년 후인 2012년 동부팜한농(2016년 LG화학이 인수)에 몬산토코리아를 매각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청양고추 등 20%의 품종특허권을 제외함으로써 우리가 청양고추를 먹을 때마다 몬산토가 로열티를 거둬가게 된 구조가 한 예다. 최근 10년간 국외로 빠져나간 종자 로열티는 1445억원에 이른다. 무엇보다 종자가격 상승으로 농민이 가장 큰 피해를 봤다. 생산비 중 종묘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7년 4.06%에서 2007년엔 5.99%로 치솟았다가 2016년 4.9%로 낮아졌다.



유전자원의 유출과 종자주권 상실 등 부작용을 겪으면서 종자기업이 국내 기업으로 인수가 이뤄졌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으로 평가된다. 2014년 농협이 농우바이오를 인수, 농업기반을 안정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또 정부 차원에서 수출경쟁력을 가진 종자 육성을 목표로 장기(2012~2021년까지 10년) 투자계획인 골든시드프로젝트(GSP)를 진행 중이다.



식량안보는 종자주권으로부터 시작되며, 종자산업은 미래의 먹거리라는 인식 아래 종자기업을 사들이는 자본의 총성 없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독일의 제약업체 바이엘은 세계 최대 종자기업인 몬산토의 인수를 진행 중이며, 2016년 중국 국영기업 켐차이나(중국화공그룹)는 신젠타를 인수, 단숨에 세계1위 농약 및 종자 강국이 됐다. 이웃 중국의 신젠타 인수는 우리에겐 종자 수출시장 축소와 함께 중국산 농약·농산물 수입 증가가 우려되기에 부러움을 넘어 불안감을 준다.



외환위기 이후 20년,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수입 농축산물이 범람하고 전 품목에 타격을 주면서 우리 농업은 침체를 거듭해왔다. 20년 전과 같은 쌀값, 도시근로자 가구의 65%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낮은 농가소득, 농가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40.3%(우리나라 전체 13.8%)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고령화 등의 지표가 이를 말해준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반영하자는 농협의 1000만 서명운동이 시작 한달여 만에 참여자가 120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농민만이 아니라 일반 국민도 농업만은 살려내야 한다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이제 정부와 국회가 입법화로 응답해야 할 차례다. 우리 농업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봄날이 오기를, 더불어 새 정부가 약속한 ‘젊은이가 돌아오는 농촌’ ‘스마트한 농업’이 펼쳐지기를 고대한다.

 

장수옥 편집부국장

 

<2017년 12월 13일자 농민신문 사내칼럼 인용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