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현해남]‘흙토람’ 보물지도 
  

현해남 제주대 생명자원과학대학 교수


　학술원은 가장 권위 있는 원로학자들의 모임이다. 그래서 이름도 ‘대한민국 학술원’이다. 일본에는 학사원이 있다. 한국의 학술원과 일본의 학사원은 매년 두나라의 과학기술을 소개하는 자리를 갖는다.

　지난해 9월에 학술원 회원인 류순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일본 학사원에서 ‘흙토람’을 소개하고 극찬을 받았다. 일본에는 ‘흙토람’ 같은 흙의 건강진단서가 없기 때문이다. 유럽에도 없고 미국에도 없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농업의 보물이다. 150여년 전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국토를 120리 간격을 두어 22층으로 나누고 각 층에 해당하는 지역의 지도를 각각 한권의 책으로 엮었다. 각 권의 책은 병풍처럼 펴고 접을 수 있도록 했는데, 22권의 책을 모두 펼쳐 연결하면 세로 6.7ｍ, 가로 3.8ｍ의 대형 전국지도가 만들어진다.

　대동여지도가 목판을 사용했다면, ‘흙토람’은 누구나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전자종이로 만들었다. ‘흙토람’에는 토양분석이 시작된 1964년부터 엊그제 분석한 토양진단 내용까지 50년간의 토양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도로 얘기하면 1만6,000장이 훨씬 넘는 양이다. 700만에 가까운 필지의 정보가 담겨 있다. 시비처방 작물만 100개가 넘고 60개가 넘는 작물에 대한 토양정보가 쌓여 있다. 

　‘흙토람’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도 이용하고 학생들이 컴퓨터를 통해 우리나라 토양이 어떤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고, 농업인을 지도하는 지도사는 어떤 비료를 사용해야 좋은지를 교육할 때 사용하는 지침서가 될 수 있다.

　농업인에게는 흙의 건강진단서이다. 산도(pH)가 높은지 낮은지와 석회질비료가 얼마나 필요한지도 알 수 있다. 질소, 인산, 칼리질비료를 많이 주어야 되는지 적게 주어야 되는지에 대한 정보도 담겨 있다. 

　하우스 토양에는 염류가 얼마나 집적되었는지도 알려 준다. 논토양에 규산함량이 얼마인지 벼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도 있다. 사람이 위가 나쁘면 위장약을 먹고 간이 나쁘면 간을 치료하는 약을 먹는 것과 같이 흙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비료 사용량을 알려 주는 처방서이기 때문이다.

　키가 작고 통통한 사람이 높이뛰기선수나 농구선수를 목표로 하는 것은 무리이다. 반면에 키가 큰 사람이 역도선수나 레슬링선수를 꿈꾸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 체형에 따라 운동을 선택해야 좋은 운동선수가 되듯이 작물도 적절한 토양을 선택해야 좋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 ‘흙토람’은 어떤 작물에 어떤 토양이 적합한지를 알려 주는 길잡이기도 하다.

　요즘은 와이파이 덕분에 어디서든 인터넷 연결이 가능하다. 교육에 참석한 농업인의 농경지를 콕 집어서 토양에 대해 설명해 주고 적절한 처방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토양비료 연구자는 흙의사이기도 하고 흙약사이기도 하다.

　농업인이 ‘흙토람’을 찾아가는 길도 어렵지 않다. 포털사이트에서 ‘흙토람’을 치고 주소와 지번을 찾아 클릭하면 자기 농경지 시비처방서가 펼쳐진다. ‘흙토람’은 50여년간 흙의사들이 만들어 놓은 보물이다. 일본에도 없고 유럽에도 없고 미국은 엄두도 못 낸다. 보물은 잘 써야 빛이 난다. ‘흙토람’으로 가는 보물지도를 클릭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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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9일 농민신문 기사내용 인용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