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남 (제주대 생명자원과학대학 교수)

 

 

PLS 전면 시행 땐 농민피해 불 보듯 대책 마련한 뒤 단계적 수순 밟아야

 

2019년부터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가 전면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해당 작물에 등록되지 않은 농약의 잔류허용기준을 1㎏당 일률적으로 0.01㎎까지만 허용하는 제도다.

PLS는 충분한 준비기간을 거치고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마라톤도 5㎞부터 시작해 체력을 키우고 거리를 늘리면서 정규 코스에 도전한다. 처음부터 풀코스를 뛰었다가는 보나마나 중간에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가기 십상이다. PLS도 단계적으로 시행하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해 연착륙시키겠다는 계획으로 접근해야 한다.

농약은 농민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농약 사용 안내 책자인 <작물보호제 지침서>는 분량만 1500쪽이 넘는다. 이름도 화학명·일반명·품목명·상표명으로 다양하게 부른다. 화학명은 농학박사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다. 그래서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유효성분이나 구조를 간결하게 표현한 명칭이 일반명이다. 일반명도 영어로 돼 있어서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비교적 친숙하고 어렵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는 일반명도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상표명은 더 복잡하다. 한개의 농약에 대해서도 판매하는 회사마다 이름이 다르다. 예를 들어 무름병 등에 많이 사용하는 일반명 발리다마이신에이(Validamycin-A)의 상표명은 제각각이다. 동방아그로와 농협케미컬은 <바리문>, 팜한농은 <아문다>, 아그로텍은 <아그로텍바리신>, 성보는 <성보바리문>, 경농은 <경농바리신>, 선문그린은 <올풍> 등으로 회사마다 이름을 달리해 판매한다. 이런 농약의 사용 가능 여부도 작물마다 다르다. 그러니 농민은 같은 농약인지 다른 농약인지,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혼란에 빠진다.

PLS 시행이 수입 농산물로부터 국내 농산물을 보호한다는 정부의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수입 농산물에 사용하는 농약은 이미 농약잔류허용기준(MRL)이 설정돼 있어서 PLS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가 <이마잘릴(Imazalil)>이다. 수입 농산물의 부패방지용 살균제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마잘릴>은 34개 국내 농산물에 MRL이 설정돼 있다. 특히 오렌지·자몽·레몬 등 감귤류와 모과·사과·배 등의 MRL은 5㎏으로 매우 높다. 그러나 <이마잘릴>은 국내에서는 판매되지 않는다. 결국 수입 농산물에는 사용할 수 있고 국내 농산물에는 사용할 수 없는 모순에 빠진다.

내년에 PLS가 시행되면 농민의 피해는 불 보듯 뻔하고 혼란만 일어날 것이다. 소면적 재배작물에 등록된 농약 부족으로 부적합 농산물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작물 재배는 꿈도 꾸지 못한다. 전(前) 작물에 사용한 농약이 후(後) 작물에 잔류됐을 때의 문제점은 심각하다.

비의도적인 농약 검출은 또 다른 책임 분쟁을 일으킬 것이다. 여러 연구자와 시험기관들은 PLS가 시행되면 부적합률이 10% 이상 높아지고 그 피해는 약자인 농민이 고스란히 짊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내년부터 PLS를 시행하면 관련 부처의 혼란도 극에 달할 것이다. 부처간 책임 소재를 따지다가 날이 저물 것이다.

국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억울한 피해농민을 줄이고 국내 농산물의 안전성을 높여 소비자에게 신뢰받는 농산물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무리한 계획을 취소하고 단계적으로 PLS를 연착륙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2018년7월27일 농민신문 기사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