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석건 (㈜한서아그리코 대표)

프랑스 7대 대형 유통업체, 과도한 가격할인·판촉행사로 농산물 제값 받기 어렵게 해

정부, 농가 보호 위해 법안 수립 원플러스원 판매 시범규제

농가, 대형 유통업체에 판매가격 제안할 수 있어
 

프랑스는 농업강국이다. 밀과 육류·치즈·포도주·채소·과일 등 어느 품목 하나 세계시장에 내놔도 빠질 게 없을 정도다. 프랑스인들은 이런 자국의 농업을 자랑스레 여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프랑스 농민들의 삶은 고단하다. 오르기만 하는 농자재비는 접어두더라도 상습화돼버린 대형 유통업체들의 농산물 가격할인으로 소득기반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7대 대형 유통업체들은 전체 농식품 판매량의 90%(신선농산물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가격파괴(Casses des prix)’라는 무기를 들고 치열한 시장점유율 전쟁을 벌이고 있다. 농민으로부터 사들인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농식품을 판매하는가 하면, 하나를 구입하면 하나를 덤으로 주는 무리한 판촉행사도 벌인다.

이 전쟁의 희생자는 1만여개에 달하는 납품업체들이다. 여기엔 대기업도 포함되지만 대부분은 중소 식품가공업체와 산지유통조직들이다. 대형 유통업체가 산지에 납품 가격인하를 압박하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농가에 넘어가는 구조가 이미 고착화됐다. 게다가 최근 7개 대형 유통업체들은 글로벌시장에 대응하고자 구매창구를 4개로 통합하고 거래교섭력을 더욱 강화했다. 프랑스의 산지유통조직들은 합병과 연합을 통해 규모화를 추진해왔지만 이들과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다.

마침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나섰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7월 식품국민총회를 소집했다. 총회에 참여한 생산·가공·유통 부분 단체들과 관련 시민단체들은 그해 12월까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부는 토론 결과를 5개 부문 16개 항목으로 정리해 ‘농업부문 상업관계의 균형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식품에 관한 법안’을 수립했다. 프랑스 의회는 올해 10월 이 법안을 승인했다.

가장 주목받는 규정은 ‘농산물 가치의 적정한 분배를 통한 농민들의 정당한 소득보장’이다. 핵심은 농산물 제값 받기를 제도화하기 위해 거래 협상에서 판매가격을 농민 또는 산지유통조직이 대형 유통업체에 제안토록 한 점이다. 제안가격은 품목(또는 품목군별)으로 조직된 ‘생산·가공·유통사업자협회(Organisation interprofessionelle)’가 생산비용과 시장현황을 반영해 수립한 지표에 근거해야 한다. 또한 대형 유통업체의 ‘과도한 가격할인(구매가격보다 낮은 판매가격)’과 판촉활동(원플러스원 판매) 규제를 앞으로 2년 동안 시범적으로 시행한다.

이번에 제정된 법의 효과는 시행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법 제정 과정에서 우리 농업이 눈여겨볼 시사점이 몇가지 있다. 첫째는 농산물 가격할인과 판촉행사가 대형 유통업체들의 무기가 되지 않도록 한 점이다. 무리한 판촉행사는 유통업체들의 승자 없는 경쟁수단에 불과하고, 농민에게는 희생을 강요한다. 법 제정을 통해 이 부당한 관행에 문제를 제기했다.

둘째는 농산업 주체와 정부·국회가 각자의 역할을 책임 있게, 그러면서도 신속하게 실행한 부분이다. 대통령은 식품국민총회를 소집했고, 참여한 생산·가공·유통주체들은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했다. 정부가 빠르게 법안을 만들자 의회도 신속한 심의를 거쳐 법을 제정했다.

셋째는 ‘생산·가공·유통사업자협회’라는 조직이다. 협회는 제정된 법에 따라 생산비와 시장 현황을 반영해 거래에 필요한 판매가격 수립 임무를 맡는다. 이 협회에는 품목별 생산·가공·유통 단체들이 구성한 50여개 세부 협회들이 참여하는데, 구성과 운영, 역할 등은 법률로 정해진다. 협회는 생산과 시장의 투명성 제고, 소비촉진 등의 영역에서 여러 단체 사이의 합의에 기반해 시장을 관리한다. 아직은 실험단계지만 ‘생산·가공·유통사업자협회’를 통해 합리적인 판매가격 기준이 도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프랑스는 농산물 제값 받기와 정당한 농민소득 보장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농산물 제값 받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농업에 던지는 메시지가 결코 가벼워보이지 않는다.

<2018년12월10일 농민신문 기사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