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영 (연세대 명예교수·제15대 총장)

 

 

지구온난화로 식량안보 중요성 커

농업소득 높일 방안 적극 모색하고 농대·농기업에 청년 인재 유입 필요

 



우리는 옛 산업을 가벼이 여기고 새로운 산업만 중시하는 정책을 지난 반세기 동안 계속해왔다. 1960년대 후반 농업을 경시하고 공업화 최우선 정책을 채택한 게 시작이다. 이른바 ‘비교우위’를 잘못 이해한 결과다. 다시 10년 후인 1970년대 후반 경공업을 가볍게 여기고 중화학공업 육성에 매진하는 균형 잃은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경우에서 보듯이 의류도 패션산업으로 발전시키면 얼마든지 고부가가치산업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혁명’ 또는 이른바 4차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인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3차원(3D) 프린팅, 빅데이터, 생명과학 등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그러나 독일은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 또는 ‘인더스트리 4.0’처럼 기존의 공장에 IoT 기술 등을 적용해 생산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과거를 통째로 버리는 게 아니라 그 위에 더 쌓아 올리는 것이다.



미흡한 산업정책으로 농가수와 농가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도시근로자가구 소득 대비 농가소득도 줄고 있다. 농촌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도 2017년 42.5%로, 전체 고령인구 비중(13.8%)의 3배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바뀌었다. 그러나 최근 귀농·귀촌의 증가는 농업·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017년 기준 약 24%이며, 쌀을 제외하면 4% 미만이다. 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들의 자급률이 모두 100%를 넘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세계 곡물시장은 생산량 대비 교역량이 15%에 불과하다. 특히 우리 주식인 쌀은 4~5%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일시적 생산감소에 따른 가격 상승폭이 매우 크다. 더구나 곡물수출국은 수출제한 조치를 취하는 등으로 곡물가격을 크게 올릴 수도 있다. 또한 기후변화에 따른 빈번한 기상이변으로 곡물 생산은 더욱 불안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1980년 저온피해로 우리가 쌀 수입을 추진했을 때 가격폭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이 사례가 보여주듯이 심각한 식량안보의 위협을 언제든 겪을 수 있다.



농업·농촌은 세계무역기구(WTO)가 강조하듯이 식량안보 외에도 여러 비교역적 기능(NTC)을 수행한다.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을 비롯해 국토환경 및 자연경관 보전, 수자원 형성과 함양, 토양유실 및 홍수 방지, 생태계 보전, 그리고 농어촌사회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 보전이 그것이다. 이러한 농업·농촌의 공공재로서의 기능은 이미 2006년 이후 초·중·고교 사회교과서에도 기술돼 있다. 공장과 도시만 있는 사회를 가상해보면 농업·농촌의 엄청난 이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농가소득은 농업소득과 농외소득을 더한 것이지만, 농업소득 비중은 계속해서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우선 농업소득의 증대를 추구해야 하는데, 미국이 1930년대 대공황 기간 중 시행한 푸드스탬프를 참고할 만하다. 저소득층이 식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쿠폰을 지급하는 제도다. 2008년 이후에는 이름이 영양보조계획(SNAP)으로 바뀌었으며, 현재 무려 4600만명의 빈곤층이 수혜자다. 우리도 SNAP를 도입하면 자유무역협정(FTA) 확대로 인한 국내산 수요감소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2017년 농축산물 수입액은 무려 323억달러나 되며, 무역수지 적자도 약 255억달러에 달했다. SNAP 도입은 국내산 수요확대 및 농업소득 증대 외에도 빈곤층에 직접 식품을 공급함으로써 사회안전망을 확충한다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농업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은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2시간 이내의 거리에 인구 100만명 이상의 도시가 60개나 되고, 그 인구를 더하면 무려 20억명에 달한다. 이는 사실상 내수시장의 확대와 같다. 따라서 이들 지역에 신선농산물을 비롯한 양질의 농축산물을 수출하면 농업소득도 크게 늘릴 수 있다. 한편으론 한국이 동북아의 식품허브(Food Hub)로 발돋움할 수 있다.



유기농 등 친환경농산물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현실도 유의해야 한다. 2017년 한국의 친환경농산물시장 규모는 약 1조4000억원에 달했다. 최근 농협이 추진하고 있는 ‘또 하나의 마을 만들기 운동’은 대표적인 도농교류사업이다. 이 운동은 농산물 직거래가 한층 활성화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운동 역시 친환경농산물의 수요를 늘릴 수 있다.



농외소득 증대의 방편으로는 농촌경관이나 농업활동을 활용해 취약계층의 정신적·육체적 재활을 돕는 치유농업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농촌관광이다. 각종 농촌체험행사나 축제가 여기에 포함된다. 한국의 관광을 보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나 경북 경주, 제주에 집중돼 있다. 반면 일본은 지방을 찾는 관광으로 바뀐 지 오래다. 전국 곳곳마다 특색을 지닌 지방관광이 매력을 더해가고 있다. 기념품과 특산품도 지방마다 독특하다. 우리처럼 서울에서 각지의 기념품을 거의 살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도 내실을 기하고 관광산업의 기초를 지역별로 독특하게 구축한다면 농촌관광을 통해 농외소득을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와 에너지·물 부족으로 우리가 식량부족을 겪을 위험성은 전보다 훨씬 커졌다. 이는 농업이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산업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사실 사람이 사는 데 식량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농민을 비롯해서 국민 모두가 농업은 사양산업이라는 패배의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앞으로 농업은 고도의 기술집약적인 미래성장산업이 될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농업·농촌에 얼마나 훌륭한 인적자원이 유입될 것인가에 달렸다. 왜냐하면 모든 일의 성패는 결국 사람에 달렸기 때문이다.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경지면적을 가진 네덜란드는 농식품 수출이 2015년 기준 1000억달러에 달한다. 미국에 이은 세계 2위다.



네덜란드에서 농업은 최첨단의 기술집약적 산업이다. 와게닝겐 대학·연구소(WUR)는 세계 제일의 농업 관련 연구기관이다. 네덜란드에서 정부·연구소·대학·농기업 사이의 연구개발(R&D) 협력은 활발하다. 또한 WUR에는 푸드밸리(Food Valley)가 있는데 대학·연구소·식품기업이 밀집해 있다. 한국처럼 기관들 사이에 장벽이 높지 않고 서로 긴밀하게 교류·협력한다.



한국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농과대학·연구소·농기업들에 의욕과 패기가 넘치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어서 미래의 성장산업인 농업을 일으켜 세우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농업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신성장산업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지금부터 차근차근 전진해야 한다.

 

 

 

<2019년1월1일 농민신문 기사내용>